근시성 황반변성 극복 일기
근시성 환반변성 극복 일기
Narim log
솔직하게 말하자면, 황반변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게는 매우 생소했다. 어릴 적부터 시력이 좋지 않아서 안과를 자주 갔었고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부터 스무 살이 넘을 때까지 안경을 써야 했다. 남들처럼 컬러 렌즈를 끼고 멋도 부리고 싶었지만 혹여 눈에 좋지 않을까 하드렌즈를 끼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다니던 대학시절, 시력 교정술을 받았다.
안경과 렌즈 없이도 세상이 선명하게 보였던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너무 좋아서 저 멀리 있는 표지판이나 간판을 일부러 읽으려고 애썼다. 그로부터 벌써 10여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확연히 시력이 저하되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었다. 세월도 세월이지만 컴퓨터를 오래 보는 직업이기에 아무래도 눈에 무리가 가지 않았을까. 라고 안일하게만 생각해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이상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말 그대로 갑자기. 평소와 같이 남편과 아침밥을 먹고 tv를 보며 수다를 떨고 있던 그 때, tv 화면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을 자각했고 놀란 나는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접수처에서 건네준 종이에는 증상을 쓰라고 되어 있었고 나는 아래와 같이 작성했다.
사물이 왜곡되어 보임. 까만 점이 맺힘. 망막이 손상된 걸까요?
사실 병원으로 오기 전 검색을 많이 해봤는데, 일시적일 수 있다고 휴식을 취해보라는 정보에 혹해 '일단 지켜보고 나중에 병원 갈까'라고 생각했었는데 마음을 고쳐먹고 당장 달려오길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근시성 황반변성으로 눈 안쪽 망막 중심부에 위치한 황반이 손상되면서 생기는 질환이라고 한다. 그로 인해 피가 나면서 까만 점이 맺히게 된 거라고. 나처럼 고도근시인 경우 안구의 모양이 길어지기 때문에 생기는 거라 안구가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다.) '완치' 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에는 앞서 말했듯 병이 발발하고 바로 인터넷 검색을 많이 했는데 워낙 자극적인 말들이 많아서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자칫 잘못하면 '실명의 위험이 있는' 병일뿐, 황반변성이 왔다고 해서 실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과는 다르게 요즘은 약도 좋아지고 금액적인 부분도 많이 개선되어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히 치료만 잘해주면 된다.
황반변성의 처방으로는 주사를 맞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루센티스'라는 약을 처방받았는데 주사를 투입한다고 해서 무조건 다 호전된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한다. 약이 나와 맞지 않는 경우도 있어 1회 투입 후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 나는 다행히 루센티스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 약 교체 없이 루센티스만 한 달에 1회, 총 3번을 맞았다. 주사 맞는 게 너무 싫어서 간호사 언니에게 조금 투덜댔더니 한 번만 맞으면 될 만큼 극적으로 상태가 좋아진다면 너무 좋은 거지만 평균적으로 다들 3회 정도 맞으시더라. 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셨다. 주사를 맞으면 당일에는 감염 위험으로 거즈를 붙여주신다. 아무래도 감염 위험인만큼 나는 샤워도 하지 않고 집에서 푹 쉬었다. 어차피 다음 날이면 거즈도 떼어주시고 샤워도 할 수 있으니까.
루센티스는 환자 지원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주사 시술 후에 데스크에서 관련 서류를 친절하게 챙겨주셨고, 팩스 또는 우편으로 발송했더니 이틀 정도 지나고서 접수되었다고 문자가 왔다. 최대 5회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고 하니 꼭! 잘 챙기도록 하자.
황반변성 이후, 내 일상은 작지만 큰 변화가 생겼다. 장을 볼 때면 황반과 눈 건강에 좋다는 토마토, 블루베리, 노란색 파프리카는 꼭 챙긴다. 아침마다 토마토를 기름에 살짝 볶아 블루베리와 함께 갈아서 마시고 있다. 루테인&지오잔틴도 매일 챙겨 먹고 있다. 업무 중간중간 눈에 무리가 오지 않게 눈을 감고 쉬어준다던가 먼 산을 보며 휴식을 취해주고 퇴근 후 잠들기 전에는 항상 눈 마사지를 해준다. 황반변성이 오기 전부터 자주 이용해주던 오아 눈마사지기가 아주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눈마사지기 소음이 불편하다면, 온열 마사지도 추천한다.
확실히, 눈 마사지를 해주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 아침 눈 컨디션이 다르다. 내가 예민해서 느끼는 걸 수도 있지만 컴퓨터를 오래 보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하지 않을까. 아,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보안경을 착용하는 것도 잊지 말자. 나는 블루라이트뿐 아니라 황반 보호까지 되는 렌즈로 안경을 맞췄다.
그리고 나는 이제 주말마다 등산을 하기 시작했다. 산이라고는 뒷 산도 거의 오르지 않던 나에게 남편이 등산을 가자.라고 제안해줬을 때 걱정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그리고 어쩐지 인생의 2막이 오른 듯한 느낌. 평소 가까이하지 않던 것을 가까이하게 되고 새로운 습관과 취미가 생겼다.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내 주변의 모든 것들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30년을 살아온 부산의 익숙하디 익숙한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고 한 살 한살 나이 들어가는 내 모습을 거울로 볼 수 있다는 게 참 재미난 일이지 않은가. 나는 이제 '근시성 황반변성'이라는 진단을 받은 지 3개월이 조금 지났다. 얼마 전 3차 루센티스 주사 시술을 받았으며 꾸준히 안과에 가서 정기 검진을 받고 있다.
모든 안 좋은 일을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예방이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건 왜 병이 터지고 나서야 병원을 갔을까.라는 거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 정기검진을 받았더라면 조금이라도 예방할 수 있는 부분이었을 텐데. 어쩌면 지금이라도 내 몸을 잘 돌보라는 뜻인지도 모른다. 이번 계기로 꾸준히 검진을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루센티스 3차 주사 시술 후, 2주가 지난 지금 시점 사물이 왜곡되어 보이는 현상도 없어졌고 까만 점도 사라졌다. 시력은 많이 떨어졌다. 그게 너무 속상하다. 하지만 지금 시력이라도 어떠한가. 세상을 마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열심히 지켜야지. 다시 한번 강조하건대, 조기 발견과 적절한 시기의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 여느 문서에서 볼 수 있듯 방치하거나 자칫 잘못하면 신경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실명까지 할 수 있는 위험한 병인 만큼 꼭!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도록 해야한다. 나는 어린 나이에 황반변성이라니. 하며 좌절하기도 했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 앞으로가 중요하다는 것, 다시한번 마음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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